김도현 뉴미디어 영어
한국인이 아닌 지구인이 되기 위한 영어 교육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은행에 취직이 잘 된다고 해서 주판을 배웠습니다. 당시에 많은 학생이 주산 학원이라는 곳을 다녔고 저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습니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나왔기 때문이죠.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컴퓨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부모님을 졸라 컴퓨터를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컴퓨터로 뭐 대단한 걸 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자판 놀이하고 게임을 하며 온종일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새로운 도구를 사용해본 경험을 통해 그 후에도 세상에 나오는 새로운 기기나 형식에 대해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당시 저의 어머님 주위에는 이런 결정을 비판하던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다들 왜 그런 걸 사주냐며 온갖 비난을 했죠. 컴퓨터로 놀기만 하다가 아이가 바보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들은 은행에 취직이 잘 될 거라며 주산 학원에 보내고 있었죠.
그래서 학교에 가면 제 옆에는 주산 배운 친구랑 컴퓨터 배운 친구가 같이 있었던 겁니다. 지금 제가 모두 컴퓨터를 배우라는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교육을 말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당장 취직 잘 된다고 무언가를 시키는 건 너무 좁게 세상을 보는게 아닌가 하는 거죠.
물론 당시 컴퓨터는 새로운 매체였고 혹시나 제어 못 할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을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원래 하던 방식, 안전해 보이는 길을 따르기 마련이죠.
더 효율적인 방식이나 도구가 나와도 기존의 방식을 버리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예전 방식을 더 숙달시키려고 하죠. 이를 비효율의 숙달화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즉,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러느니 비효율적이지만 이미 익숙한 것을 더 숙달시키는 겁니다. 그럼 비효율을 감출 수 있으니까요. 보통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매체와 방식만 다를 뿐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주판에서 컴퓨터, 지금은 비디오 게임이나 태블릿 기기에 대한 사용 자체를 비난하죠. 학습 방식에서도 200년 전 방식을 조금 수정해서 문제를 가릴 정도로만 숙달시킵니다.
즉, 단순히 '내신을 준비하느냐, 수능이냐, 시험에서 몇문제 낼 거냐, 절대 평가냐 상대평가냐' 같은 얘기만 하죠. 비효율의 숙달화입니다.
문제는 시험 문제나 평가 방식같이 성적으로 어떻게 더 정교하게 줄 세울지를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적으로 더 공정하게 줄세우는 방법은 아무리 좋게 만들어도 교육을 지금보다 더 발전 시킬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비효율의 숙달화는 버리고 학생들 미래에 실제적이 도움이 되는 교육을 고민해야 합니다.
글전체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